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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15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남긴 과제
2019년 03월 25일 (월) 17:10:23 글. 가평문화원 향토사연구원 정 용 칠 kkkggg@chol.com

   
 
지난 3월 초.

필자는 익명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2월 25일자 가평타임즈에 기고한 가평 315 독립만세운동 100년에 관한 기사를 읽고 자신의 조부(祖父)와 가문의 이름이 활자화되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 태화관의 31 독립선언 당시 비밀리에 독립신문을 편집하고 전국으로 송부 책임을 맡았던 정한교(鄭漢敎)와 목동 멱골에서 촉발된 가평 315 독립만세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정흥교(鄭興敎) 정성교(鄭聖敎)의 조카 정태흥(鄭泰興)씨로 현재 수원 경찰서에 재직하고 있는 분이다.

정태흥씨는 독립운동을 한 집안의 무한한 자긍심과 자손들에게도 산 공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외 315 만세운동의 전개과정에 관하여 문의하는 전화 몇 통을 받았다.

이런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지금까지 가평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관계가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가문의 구전(口傳), 한정된 책 몇 권에 의해 기록되어 전해졌을 뿐 지자체나 전문매체에 의해 가평군민은 물론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2019년 3월 15일 목동2리 멱 골 179-8 번지 아침 8시.

100년 전 함성을 재현하려는 동네주민, 상황극을 연출하려는 가평 생활 연극단원, 군인과 학생 등 80여명은 기남(沂南) 이규봉(李圭鳳) 선생이 역사적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훈학당(訓學堂) 앞에 섰다.(사진)

사진에서 보듯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이 초라한 건물이 100년 전 가평의 자주독립정신을 잉태시킨 곳이다.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텃밭 위에 100년을 지탱해 온 이 단칸 목조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성난 바람이라도 불면 금세 날아갈듯 한 얇은 판자때기 속에 우리 가평 100년의 얼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부끄러움과 초라함을 넘어 한 세기 난경(難境)의 풍파를 이겨낸 이 작은 목조물에 숙연한 감사를 올릴 뿐이다.

목동 사거리에서 본격적인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할 때 315 당시 만세를 주도하며 가평읍 진출에 선봉에 섰던 이홍복(李弘福) 선생의 외 아드님 이용환(李用煥) 옹(翁)을 뵈었다.

올 해 95세의 광복회원이신 옹께서는 독립지사의 후손답게 만세삼창을 힘차게 부르시고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나 내년에도 꼭 여기서 만세를 부르고 싶다”며 작은 태극기를 정성스레 가슴에 품으셨다.

당시 북면 면장 강규흠(姜奎欽)은 북면 일대의 시위군중이 몰려들자 면소 뒷산으로 도망치다 끌려내려 왔다.

오늘의 북면 면장과 공무원들은 그럴리야 없겠지만 자기 고을의 자랑스런 재현행사에 마음으로부터 피하고 싶거나, 하는 수 없이 검은 두루마기나 입고 만세삼창에 참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가평군청 앞마당에 모인 주민, 학생, 군인 등 600여명의 군중은 요약된 당시 만세운동상황극을 보면서 각자의 느낌으로 그날의 역사현장을 체감했을 것이다.

백 년 전에 가평군수 김기환(金基煥)은 겁에 질려 도망치다 4년의 옥고를 치룬 장기영(張基榮)에게 끌려나와 하는 수 없이 만세를 불렀다. 그가 겨우 만세 시늉만 내자 성난 군중들은 군수에게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독립은 어느 나라 독립인가? 독립만세를 크게 부르라!”하자 그제야 만세삼창을 하였다.

오늘의 가평군수가 재현행사의 연출 장면으로 짐짓 끌려 나오는 모습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자 재현행사는 절정에 이르렀다.

이어 퍼포먼스 행사의 일환으로 대형 태극기에 손도장을 찍는 김성기 군수의 결연한 자세에서 내년에는 더욱 활성화된 행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만했다.

행사가 마무리 될 즈음 귀한 손님이 무대 위로 올라 오셨다.

315 만세운동의 지도자 이규봉 선생의 손녀이자 이윤석(李胤錫)의 따님이신 이원각(84세) 여사다.

여사는 “선열들의 위업을 기리는 행사와 함께 지역주민과 젊은이들에게 민족자존의 애국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시며, 필자에게는 매년 이런 행사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평생소원이라고 하셨다.

해산하는 과정에서 이병덕 가평교육장과 이복희 가평초교 교장은 내년부터는 적어도 두 달 전부터 각급학교에서 역사체험 학습장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100년 전 가평 공립학교 훈학 이재학(李在學)과 박봉현(朴鳳顯)이 학생 전체를 이끌고

시위대에 합류했던 것처럼 이복희 교장은 6학년 전 학급을 직접 인솔하여 역사체험 학습을 시켰다.

이복희 교장은 앞서 기술한 독립지사 이홍복 선생의 생질녀(甥姪女)로서 독립운동 가문의 후손임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이날 재현행사를 공영방송 KBS가 행사 당일 네 번에 걸쳐 방송했다는 점이다.

아침 7시 뉴스광장, 오전 9시 30분 뉴스, 저녁 7시 뉴스, KBS 9시 뉴스 등 하루에 네 번에 걸쳐 다른 버전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더구나 오전 9시 30분 뉴스타임에는 가평군청 앞마당에 대형 중계방송차를 동원하여 생중계를 했다.

이슈가 될 만한 지역뉴스는 가끔 방송되기도 하였지만 역사적 주제를 갖고 재방도 아닌 각기 다른 리포트로 지상파를 탔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뉴스가 아니겠는가?

그럼 어떻게 이런 사실이 가능했을까?

모든 일이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후원자가 있기 때문이다.

가평 출신의 현 KBS 박범서 충주 방송국장과 가평에 연고가 있는 김학재 KBS 현 프로듀서의 도움이 컸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도 몰랐던 가평의 자랑스런 독립운동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어 늦었지만 100주년 재현행 홍보에 큰 힘을 보태기로 했던 것이다.

요즘 각종 언론 매체들이 31운동 100주년 특집기사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는 이때

우리도 북면 멱 골이 독립운동의 발상지로 성역화 되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보다 큰 특집 기획물로 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한결같이 토로했다.

문화원 주최의 재현행사가 군청 앞에서 종료되고 가평군이 주관하는 가평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식이 예술회관에서 거행되었다.

100주년 이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외형적 화려함과 한일간의 화해, 용서, 평화의 장(場)으로 펼쳐졌다.

필자가 제기하고 싶은 것은 기념식이 추구하는 의미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고 온 흰 튜울립 꽃 한 송이에 숨겨진 의도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일본 홋가이도를 중심으로 한 전(前) 중의원, 시의원 10여명은 명목상 화해를 구하고 지역 간 교류를 통해 향후 가평군과의 발전적 관계를 지속시키고자 참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읽은 추념사(追念辭)는 진정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특정 종교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였다.

순간 큰 소리로 저지하고 싶었으나 큰 행사이니만큼 자제는 하였으나 아침에 외친 멱골에서의 만세삼창이 가슴으로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것은 화해와 용서가 아니라 또 다른 미명하에 잠복된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저열한 꼼수임을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었다.

지자체 공무원, 의회 관계자, 그리고 우리 모두는 100주년이 지닌 상징적 함의(含意)를 몰랐을까?

2년 전에는 3천만 원의 예산으로 재현행사를 했으나 지난해에는 한 푼도 책정하지 않았고, 100주년이 되는 올 해도 군(郡)에서는 동전 한 닢 내려 보내지 않았다.

이에 가평 문화원에서는 18개 단체 및 개인에게 구걸(?)에 가까운 2,890만 원의 협찬을 받아 이 행사를 치룬 것이다.

이 속에 문제의 단체가 후원금을 낸 조건으로 특정종교 운운하며 추념사를 읽은 것이다.

김만종 문화원장은 조사에서 “부끄럽고, 죄송하고, 반성한다.”고 했다.

이는 단순히 애국선열에 대한 통절(痛切)한 사죄일 뿐 아니라 이 행사와 관계되는 모든사람에게 던지는 반성문이었다.

백 년의 함성이 재현되는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가평문화원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이는 이 행사가 과연 유지될 수 있겠나 하는 점이다.

몇 안 되는 직원, 열악한 재정 환경 등 정말 열정만으로 이 행사를 치러냈다는 것에 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감사를 보낸다.

아울러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 할 점은 우선 의식(意識)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음으로는 홍보의 중요성이다. 멱 골의 자랑스런 역사를 널리 알려야 할 당위성을 새삼 절감했다.

끝으로 가평 315 재현행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움직일 수 없는 책무(責務)임을 우리 모두는 자각하여야 한다.

글. 가평문화원 향토사연구원 정 용 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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