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하, 지도자들의 천하쟁패 게임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난세에 몸을 일으켜 천하를 평정하고자 캠프를 열고 나름 정책을 펼쳐 나선 것이다. 장안에서 연일 귀가 따갑도록 세치 혀 부딪는 소리가 여론의 파도를 타고 들려온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스스로 떨쳐나선 지도자와 그를 보좌하는 참모들 겉모양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내심 권력쟁탈의 고리가 복잡하게 연결되고, 편 가르는 정략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지도자의 리더십을 등에 업은 참모들은 머리를 싸매고 전략을 짜고 있는데, 정작 주권자인 민초들은 마스크 속에서 침묵하고 있다. 그들의 공약이 허허롭거나 민초들 먹고 사는 문제와는 하등 관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여론의 파도에 따라 영웅호걸들이 나타났다가 홀연 무대 뒤로 사라지기도 한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지도자와 참모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참모가 지도자를 배신하고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영학 슈퍼리더십 관점에서 탐구해 보면, 천하를 꿈꾸는 지도자와 그를 보좌하는 참모의 가치관은 내심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지도자는 천하를 거머쥘 주군이고 참모는 판세를 설계하여 주군을 옹립하는 책사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책임분담에 실패할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하루하루가 불확실한 난세에는 공약보다 인재 리스크가 더욱 큰 확률을 차지하게 마련이다. 이 대목에서 슈퍼리더를 만들어야 하는 참모의 역할이 매우 무겁게 다가온다.
무대는 오래 전 중국 후한 말 패권시대이지만, 오늘날 비슷한 권력투쟁의 암중모색이 판박이처럼 이어진다. 거대한 스케일의 군웅할거, 천하쟁패를 겨루는 삼국지 이야기 초반에 진궁이라는 참모가 등장한다.
청년 조조가 한실 재건의 깃발을 높이 들고 동탁에게 덤벼들다가 사로잡혔을 때, 현령이라는 작은 벼슬아치였다. 조조의 큰 포부를 듣고는 주군으로 모시고자 감옥에서 탈출시킨 후 충성스런 참모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 한 몸 보전하자고 아버지 친구인 여백사 일가를 단칼에 죽이고는,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외치는 조조의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고는 실망한 나머지 곁을 떠났다.
절치부심, ‘마중적토 인중여포’라는 고사의 주인공 여포의 참모가 된 후 조조군에 대적하여 열혈전투를 벌이다 사로잡히고 말았다. 조조는 진궁을 데리고 언덕으로 올라가 만천하를 바라보며 다시 함께 뭉치자고 권유했다.
“내가 싫다고 떠나더니 겨우 여포한테 붙었나? 이제 다시 만났으니 함께 저 아름다운 만천하를 얻어보세.”
그러나 진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포는 자네보다 어리석지만, 잔인하고 비열하지는 않네. 나는 이미 결심했으니 마지막 가는 길을 비굴하게 만들지 말고 어서 보내주게.”
진궁은 조조의 참모가 되기를 거부하고 기꺼이 망나니에게 목을 내밀었다. 끝내 진궁의 마음을 얻지 못한 조조는 눈물로써 마지막 배웅을 했고, 그의 모친과 어린 자녀들을 끝까지 보살펴주었다. 그 후로 조조는 정의로운 참모들의 의견을 구하는데 있어서 신중했다.
이렇듯 한 때 막역한 주군과 참모 사이였던 둘은 역사 속에 아름다운 이별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가치관이 달라 지도자를 떠난 진궁의 마지막 의연한 모습은 진정한 참모의 자세로 존경받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원결의까지 맺은 주군과 참모의 관계가 영원한 상생으로 끝날지, 혹은 배신으로 끝날지, 그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언필칭, 지도자와 참모 간에 벌어지는 의리와 배신은 역사의 줄기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난세에는 지도자와 참모의 아름다운 만남과 이별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글. 이상용(가평군 전략사업TF팀장,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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